Jazz Study2012. 8. 7. 20:42

姓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독일계입니다.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지요. 시카고 스타일을 대표하는 분이기는 하지만 만족스런 녹음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의 핫 세븐, 젤리 롤 모튼의 레드 핫 페퍼스, 또는 스윙 시대의 카운트 베이시나 베니 굿맨, 테디 윌슨 등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밴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재즈는 미시시피 강을 따라 북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스토리빌이 폐쇄된 이후 많은 뮤지션들이 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민들레 홀씨처럼 그들의 음악을 퍼뜨렸던 거죠.

빅스 바이더벡은 독일 낭만주의의 전통을 재즈에 도입했다고 합니다.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느꼈을 실향과 향수의 감정처럼 독일 이민 가정 출신인 그도 무의식적이나마 흑인들과 유사하게 고국에 대한 동경과 우수의 감정이 있었던 것이죠.

그는 완벽주의자였고 매우 내성적이었는데 연주가 없는 날이면 술에 절어 있거나 독일 오페라를 보러 갔다고 하는군요. (술을 마시거나 엘피 걸어 놓고 좋아하는 저랑 비슷하네요.) 트럼페터인 Jimmy McPartland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그가 술에 빠져 살았던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사람보다 음악적으로 많은 일을 하려 했던 의욕과 소망을 채우지 못한 좌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폐질환으로 1년 간의 휴가를 얻은 그가 삶의 마지막 몇 주 간을 베이시스트 조지 크래슬로의 아파트에서 보낼 때였다고 합니다. 그는 새벽 서너시면 일어나 코넷을 연주하곤 했는데 이웃들 가운데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대요. 사람들은 조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그에게 아무 말도 마세요. 우리는 그의 연주가 멈추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Georgia On My Mind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